루터교회(Lutheran Church)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로부터 시작된 ‘첫 번째 개신교회’입니다.

중세교회가 ‘성서적 신앙’에서 멀어졌을 때, 마르틴 루터와 그의 동료들은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 “오직 은총만으로””(Sola Gratia), “오직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라는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타락한 중세 교회로 바로 세우고자 애썼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로마 교황청은 “루터란”(Lutheran) 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비하의 말로 종교개혁가들을 조롱했습니다. “루터교회”(Lutheran Church)란 명칭은 이 비하와 조롱의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루터교회가 많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루터교회를 낯설어하십니다. 하지만, 루터교회는 개신교회들 중 ‘첫 번째 개신교회’로서, ‘종교개혁의 정신과 프로테스탄트 신학’, 그리고 초기 교회로부터 내려오신 ‘신앙의 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참고로, 루터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7,300만 명의 수찬교인들이 신앙생활하고 있는 개신교 최대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루터교회를 국교회로 삼은 북유럽 국가들이 다수 있습니다(스칸디나비아 3국: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 핀란드, 스웨덴 등)

루터교회가 우리나라와 처음 인연을 맺은 때는 1832년입니다. 독일 루터교 선교사였던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1803-1851)가 충남 보령에 위치한 “고대도”를 방문하면서 루터교회가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귀츨라프는 고대도에서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과 전도 문서, 서적, 의약품 등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감자의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특별히, 귀츨라프는 주민들에게 ‘십자가’란 말과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가르쳐 주었는데, 이 일은 ‘한국 교회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또 귀츨라프는 최초로 ‘한글 자모’를 서양에 알렸습니다.

루터교회의 한국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1958년입니다. 다른 개신교단들보다는 뒤늦은 선교였지만, 남다른 선교 정책으로 한국 사회와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것은 ‘교단의 교세의 확장보다는 한국 교계 전체의 건강한 성장과 성숙을 위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한국 루터회’는 다른 교단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첫 번째 개신교회’로서, 종교개혁의 정신과 신학, 신앙 유산을 보존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리고 ‘디아코니아’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복지 증진에 힘썼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베델성서대학’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베델성서연구’,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루터대학교’, ‘기독교 통신 강좌’를 비롯해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 제공하는 ‘루터란 아워’, 그리고 신학서적을 출판하는 ‘컨콜디아 출판사’가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 한국 루터회’는 ‘대한성서공회’와 ‘한국찬송가공회’, ‘기독교 방송'(CBS)의 이사로써 성서의와 찬송의 편찬과 보급, 그리고 건강한 기독교 문화의 형성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 “광주제자들교회”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운지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록, 우리 교회는 상가의 작은 교회이지만, ‘기독교 한국 루터회’에 소속된 교회로서, 종교개혁적 신학과 신앙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 “예수 그리스도의 몸”, “말씀에 붙잡힌 성도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되고자, “복음의 순수한 선포”와 “성례전의 올바른 시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광주제자들교회 교우 일동.

14.11.28 제자들 최종 로고완성 123 [Conve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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